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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뜰의 꽃밭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8/08/26 [22:09]


말복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한풀 더위가 꺾였다. 북한산을 오른다. 봄의 끝자락에 마지막으로 오르고 여름 한 철 건너뛰었다가 말복 다음날 찾는 중이다. 올라가는 길은 초가을처럼 청량하다. 재난에 가까운 폭염을 겪고 난 후라 맨 얼굴, 맨 팔에 와 닿는 바람이 신의 선물처럼 소중하다. 오가는 사람만 없으면 홀딱 벗고 알몸으로 바람을 맞고만 싶다.

산에 오르는 내내 나무들에게 여름 한 철의 안부를 묻는다. 다들 잘 견뎠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하지만 물을 것도 없이 한눈에도 피로해 보인다. 대체로 나뭇잎들은 아래로 처졌고, 그마저 곰팡이 때문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허옇다. 미국선녀벌레들은 올해는 유난히 극성을 부려 그것들이 부려놓은 밀랍으로 관목 잔가지들은 폐가처럼 을씨년스럽다.

오랜만에 올라오는 북한산 대피소는 풀이 한 가득이다. 지난겨울 처음 오고 봄의 끝자락에 마지막으로 왔으니, 무릎보다 높이 자란 푸른 풀의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혹독한 여름을 겪는 동안 시간 저 혼자 여기서 구름처럼 나른히 흘러간 것만 같다. 푸른 풀 위로는 맑은 잠자리들. 그 날개 위로 늦여름 햇살이 비껴 허공은 얼음장 같은 얇고 투명한 것을 품은 것처럼 보인다.

3백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중국굴피나무는 어른 얼굴높이에서 세 갈래로 분기했다. 그 부근 길도 마찬가지로 나무를 중심으로 세 갈래로 갈라졌는데 아래쪽은 북한산성 주차장 가는 길이고 위쪽 두 갈래는 각각 대동문과 용암문이다. 길도 나무를 따라 갈라졌을까. 아니면 길을 따라 나무도 세 갈래로 갈라지며 이정표가 되기로 작정했을까.

청량한 늦여름의 바람을 따라 풀들이 일제히 흔들린다. 그 위의 잠자리들도 함께 흔들리고 공기도 덩달아 출렁, 흔들리는데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아니, 이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혹독한 여름을 겪는 동안 젠가(Jenga)라는 보드게임을 자주 떠올렸다. 직사각형 나무 조각들을 탑처럼 쌓아놓고 차례로 한 조각씩 빼 그 위에 얹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먼저 무너지는 팀이 지게 되는 게임이다. 올해의 폭염은 아무래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과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하나씩 나무 조각을 뺄 때는 잘 모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무너지는 젠가처럼 올해가, 마침내 맞닥뜨릴 무서운 재앙의 임계점을 향해 가는 첫 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수한 에어컨 실외기들을 무기처럼 장착한 도시의 빌딩 벽 사진, 에어컨으로는 지구의 온도를 0.1도도 낮출 수 없다는 비관적인 기사, 인류가 나타난 뒤 생명체의 멸종속도가 1000배 빨라졌다는 우울한 서적들을 보며 어쩌면 먼저 생을 마감한,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 우리의 선조들이 지금의 우리 혹은 미래의 아이들보다 더 행복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대피소 풍경과 마주하자 그만 무서운 재앙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나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가 떠오르며 새삼 마음이 아프던가 보았다.

낡은 대피소 돌바닥에 가만 앉았는데 그 옆 흙바닥으로 손바닥만한 나방 한 마리가 덧없이 날개를 떤다. 어디를 헤매다 온 것인지 고운 겨자빛 날개가 몽당 빗자루처럼 낡고 닳았다. 시맥을 남기고는 날개 대부분은 상하고 바스라졌다. 옛날이야기에서는 함부로 쓴 부엌살림이나 빗자루, 부지깽이 같은 것들이 나중에 도깨비로 변한다고 하던데 그의 날개는 절반이 넘게 상해 나중에 도깨비로도 태어날 수 없을 지경이다. 상한 날개 한가운데 그래도 맑고 동그란, 연필 지름만한 유리창 두 개가 선명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유리산누에나방.

이 지경이 되도록 그는 어디를 헤맸을까, 무엇을 찾아 다녔을까. 아마 사랑을 찾아, 혹은 알을 낳을 적당한 장소를 찾아 북한산 여기저기를 날아다녔을 것이다. 긴 여정의 끝에 이렇게 해지고 닳아졌을 것이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그는 내가 손으로 살짝 날개를 만지려하자 제 자리서 격렬하게 맴을 돈다. 어찌나 격렬하던지 그 해진 날개에서 바람이 일며 내 손에까지 닿는다. 산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바람에 그의 날개가 가끔 휘청, 반으로 접히는데 그럴 때 바람은 그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날개를 밀어 그가 한 번 더 허공으로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를 지켜본 지 두 시간이 지났을까. 그의 다리 여섯 개가 마침내 빳빳이 굳으며, 이제 안심이 된다는 듯 가지런히 굳으며 그의 가슴께서 순결히 오그라든다. 모아 쥔 그의 다리 여섯 개에는 몹시 간절한 소망 그러니까 어딘가에 잘 갈무리해 두었을 자신의 어린 것들의 안위와 무탈함에 대한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이다. 그의 임종을 마저 지켜보지 못하고 용암문으로 내려간다.

가파른 비탈을 지나 도선사 경내에 닿자 왼쪽 사면으로, 잎이 갈색으로 변한 소나무 세 그루. 크기며 늠름함이며 어디 빠지는 곳이 없는데 푸르러야 할 바늘잎 대부분이 갈색으로 변했다. 한 그루는 병에라도 걸린 듯 완전히 갈색이고 나머지 둘은 절반씩 갈색이다. 며칠 전 있었던 다비식 때문일 것이다. 바람은 여전히 청량한데 그날의 이글거리는 불길의 열기가 떠오르며 새삼 얼굴과 팔이 뜨거워진다.

그날 도선사에서 다비식을 보게 되었다.

다비식을 하기 전 스님의 법구가 도선사 광장을 한 바퀴 돌았다. 먼발치서 지켜보던 나는 만장 행렬의 뒤로 스님의 법구가 나타나자 잠깐 숨이 멎고 말았다. 실제 보는 것이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적어도 그가, 꽃상여까지는 아니어도 반듯한 관에 누워 있으리라 믿었다.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는 그러나 꼭 그의 육신만큼 한 초라한 평상에 누워, 그리고 아마도 그가 평소 입었을 붉은 가사 한 장을 달랑 덮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사유하던 머리와 중생의 무탈을 바라던 간절한 두 손과 부지런히 갈구하며 세상을 걸었을 마른 두 발의 윤곽이 그만 가사를 따라 고스란히 드러나던 것이다. 이 세상 것이 아닌  육신의 흔적을 훑는 일은 적어도 내게는 아직까지 두렵다. 36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날에, 장작이 뿜어내는 불길이 멀리서도 뜨거워 연화대 가까이는 갈 수 없었지만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연실 닦아내며, 마음만은 그 불길에 뛰어들고만 싶던 것이 생각이 난다. 뛰어들어, 미움이며 원망이며 욕심이며 남김없이 태워버리고 싶던 것이.

스님의 육신이 타는 동안 소방관들은 주변의 소나무들에 연실 물을 뿌렸다. 나무줄기에 방화포를 둘렀지만 푸른 잎에까지 두를 수는 없어 자주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주었던 것. 하지만 그러한 조치로도 불길을 아주 막을 수는 없었던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만나게 된 소나무들은 푸른 잎이 아니라 갈색 잎이 되어버렸다. 내년에는 건강하게 새잎이 돋아 다시 푸른 소나무를 보게 되기를 바랄 뿐.

▲     © 사진 김태남

나이가 들수록 나뭇잎 한 장 뜯는 일이 어렵다. 죽어가는 나방 한 마리를 지켜보는 일, 그의 닳아 해진 육신이 개미들에게 먹히는 것을 보는 일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노스님은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라고 유언을 남겼다는데 이러다 나는 오두막 뜰의 꽃밭은커녕 어느 외국노래의 제목처럼 묘비명에 혼란, 이라고 적게 되지 않을까.

나는 언제쯤 무심히, 나뭇잎 한 장을 뜯을 수 있게 될까.


기사입력: 2018/08/26 [22:09]  최종편집: ⓒ 서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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