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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잠들면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6/07/22 [11:32]

밤나무산누에나방 고치를 우연히 얻게 되었다, 는 건 거짓말이고 중미산 산중턱 임도를 걷다가 버드나무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몰래 집으로 가지고 왔다. 어른 손가락만한 크기에 여름철 죽부인(竹夫人) 모양을 했다. 짙은 고동색 그물망으로 되어있는데 손으로 힘껏 잡아당겨도 끄떡없다. 그물눈 사이로 언뜻 보이는 애벌레는 아직 번데기는 되지 않은 듯 물컹한 느낌. 색깔이며 모양이며 조금 흉하지만 그래도 우화(羽化)하면 손바닥만한 커다란 밤나무산누에나방을 보겠거니 기대하고는 베란다 방충망에 붙여놓았다.

이틀 후 토요일 오전, 고치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놀라 아이를 불렀다.

기생 당했나봐.

.......?

내가 속삭였다.

▲     ©사진 제공 장하윤

기생벌이라는 것이 있다. 무슨 연유인지 이 친구들은 나비목 애벌레 몸속에 산란관을 찔러 넣어 자신의 알을 낳는다. 나중에 그 알들이 깨어나면 살아있는 애벌레 몸을 파먹고 자라고 그러다 성충이 되면 애벌레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온다. 이렇게 기생당하는 나비목 애벌레의 비율은 호랑나비과 애벌레의 경우 70 내지 80퍼센트.

고치를 앞에 두고 우리는 아마 조금 겁을 먹은 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우리가 잠든 사이 기생벌이 나와 집안을 날아다닐지도 몰라, 우리 몸에 알을 낳을 거야, 우리가 기생당하는 거지,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는 거대한 벌로 변해 있으려나, 우리 아파트는 곧 기생벌 좀비 아파트가 되고 군대가 출동하겠지.....등등.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속으로는 좀 으스스한 기분이 되어, 아이는 약속이 있다고 나가고 나는 예매해둔 영화를 보러 집을 나섰다. 현관을 나서기 전 아이는, 집에서 기생벌을 키우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제 마음을 내비치긴 했다.

영화는 소문대로 처음부터 피 칠갑. 실눈을 뜨고 애써 초점을 흐려가며 간신히 보아내던 중인데 늘 그렇듯 죽었던 사람이 갑자기 살아난다. 독버섯을 잘못 먹었던지 돼지고기를 잘못 먹었던지 하여간 피부는 온통 벌겋게 무엇이 돋아가지고 눈동자는 이미 뒤로 넘어가 눈알이 허옇다. 산에서부터 인가(人家)를 향해 비틀거리며 내려오던 그자는 곧 그를 물리치려는 세 명의 사내들과 맞닥뜨리는데 다시 살아날 적에 괴력도 덤으로 얻었는지 도무지 게임이 안된다. 이빨로 한 명의 뺨을 닭 껍질처럼 물어뜯어버리더니 곧 다른 한 명의 모가지를 물고, 나머지 한 명이 쇠스랑으로 그자의 머리를 내리치자 제 손으로 제 머리에 박힌 쇠스랑을 빼낸다. 그리고는 다시 으르렁거리며 주인공에게 달려들다가 당연히 결정적 순간에 입에서 콸콸 피를 토하고는 거꾸러진다. 어둠 속에서, 아이고 힘들어, 하며 빳빳해진 어깨와 목을 연실 비틀고 주무르다가 문득 집에 두고 온 밤나무산누에나방 고치에 생각이 미쳤다. 곤충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에 대면 비교할 수 없이 짧은데 그새 기생벌들이 밤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몸을 뚫고 밖으로 나온 것은 아닐까. 어른벌이 되어 무법천지로 온 집안을 날아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하여, 내 가족에게 불길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결국 자막이 올라가기도 전에 영화관을 나와 집으로 달리다시피 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베란다와 마루가 접한 문틀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베란다 방충망을 살폈다. 고치는 여전히 간헐적으로 부르르 떨고 있다. 하지만 아직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급히 채집통에 고치를 담아 다시 동네 앞산으로 달렸다.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늙은 밤나무 가지에 후딱 고치를 걸어놓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산을 나왔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다음날 새벽, 요란한 직박구리 소리에 잠이 깼다. 그리고 깨자마자 몹시 후회하는 마음이 되었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어리석은가. 밤나무산누에나방이 바로 눈앞에서 날개돋이하는 장면을 볼 기회도 놓쳤거니와 설사 기생 당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인데 사정이 그러하다면 그 광경도 직접 보아내야하지 않겠는가. 다시 데려올까 또 오전 내내 고민하다가 오후 느지막해서야 앞산에 갔다.

고치는 어제 버리고 온 늙은 밤나무에 여전히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가지에서 내려 안을 살피는데 이런, 고치 안에 든 것은 이제 물컹한 애벌레가 아니라 번데기. 그러니까 녀석의 격렬한 떨림은 아무래도 기생보다는 번데기로 변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던 것 같았다. 그물망 안의 번데기는 여지껏과 달리 미동이라곤 없었다. 다만 번데기 위쪽 3분의1 지점에 마치 가지런히 다리 여섯 개를 모은 듯한 자국이 있고 그 위로는 안으로 함몰된 두 개의 점 같은 것이 박혔는데 그의 눈 같기도 했다. 저를 버린, 그물 밖 나를 응시하듯 고요했다.

이번에는 집으로 도망 오는 대신 고치를 들고 산을 넘었다. 반대편 중턱에 작은 산사. 일요일 오후고 날은 더워 인적이 없다. 백중(百衆)이 가까운지 법당 마당에는 흰 연등들이 걸렸다. 표찰에는 어머니, 아버지, 시어머니, 조부 등의 이름이 써있다. 죽은 자의 천도와 평안을 비는 등(燈)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표찰들이 서로 부딪히며 차르르, 맑은 소리를 낸다. 잠시 후 스님 한 분이 종루에 올라 차례로 목어(木魚)를 두드리고 운판(雲版)을 두드리고 종을 치는데 종소리는 동심원처럼 내 몸을 파고들어 나는 물결인 듯 가볍게 흔들리고, 어두운 저녁 법당에는 스님의 홀로 경 읽는 소리. 다시 바람이 불어 흰 표찰들은 물풀처럼 일제히 한 곳으로 기울고, 기울며 생긴 빈자리에는 막막한 고요. 묵직하다. 나는 고치를 감싼 버드나무 가지를 손에 쥐고 속으로 물었다.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워 그깟 나방이 한 마리 앞산에 갖다 버렸는가.

▲     ©사진제공 이명정

무엇이 두려운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또, 상황마다 다르다. 하지만 근본은 같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나의 죽음이 두렵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두렵다. 그런데 순리대로 태어나 순리대로 살고 순리대로 사랑하다 늙어 죽는 것도 두려울진대 하물며 폭력에 의해 타의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1746년~1828년)의 그림 한 점을 떠올린다.

왕정 시대 옷차림을 한 남자가 팔에 얼굴을 묻고 책상에 엎드려 있다. 지쳐 잠시 엎드린 것도 같고 잠이 든 것도 같다. 엎드린 그의 등과 머리 위로는 검은 부엉이와 박쥐 떼가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발치에는 살쾡이 한 마리가 앉아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다. 음산하다. 남자가 엎드린 책상 앞면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이성이 잠들면 악마가 나타난다’

예술가의 감성을 강조한 글귀라고도 하고 그 당시 폭정에 대한 고발이라고도 한다. 의도야 어떻든, 인간의 이성이 잠들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 또는 이성에 반하여 작동하는 상태를 역사는 비이성 내지는 반이성, 불합리라고 기록한다.

요즘 들어 실은, 두렵다. 나이를 먹어서만은 아니다. 비이성이나 반이성의 상태를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돈다. 아름다운 이 땅의 풀숲과 계곡 앞에 지옥을 뜻하는 영어 hell이 붙어 그리 되었다. ‘헬조선’이 진실을 담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말 주변에는 부엉이와 박쥐 대신 실의와 분노, 상실과 두려움이 희미하게 떠돈다. 헬조선에는 또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또 다른 최신식 미사일이 곧 배치될 거라고도 한다. 찬성하는 이도 있고 반대하는 이도 있다.

흉흉하긴 나라 밖도 마찬가지. 낯선 나라들의 내전 소식은 내막을 알 길 없이 끝이 보이지 않고, 평생 한 번 가보고 죽을까 말까한 아름다운 지중해에는 난민들의 시신이 떠돈다고도 한다. hell이니 미사일이니 전쟁이니 학살이니 하는 것들은 비이성이나 반이성과 비슷한 말이다. 그렇다면 ‘악마’와도 비슷한 말이 된다.

다시 고치의 내부를 살핀다. 미동도 없다. 잠든 것인가.

질긴 그물망 안에 든 저 말없는 고요, 보름 후 스스로 고치를 녹이고 세상 밖으로 나올 때 그것은 단지 한 마리 펄럭이는 두려움일까 명료한 이성일까.

▲     ©사진제공 이명정

 


기사입력: 2016/07/22 [11:32]  최종편집: ⓒ seoch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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