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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이니
 
장수정 기사입력  2017/07/25 [11:25]

▲     © 사진 장하윤

6월 어느 토요일 서해 작은 섬 구봉도에 갔더랬다. 휴가철이 아니어선지 마을은 인적 없이 고요했고 마을 끝자락, 산과 이어지는 경계 어디쯤에서는 오디가 새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고요해 오디는 더 검어보였다. 입술이 새까매지도록 따먹고는 해발 100미터가 채 안 되는 낮은 산을 올랐다. 섬이라 내륙에서는 보기 힘든 나무들이 많았다. 일일이 살폈다. 오솔길은 또 산딸기가 지천이라 더러는 따먹고 더러는 가지째 끊어 옷자락에 붙이고는 좋아라 히히덕거리기도 했다. 정상에 서자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하늘에 붕 떠오른 듯이 보였다. 말끔한 소사나무숲이 정상 너머 바로 아래 있어 그 그늘에서 김밥도 까먹고 혹시 천마 꽃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낙엽 더미도 살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다 섬을 나가는 배 시간이 얼마 안남은 것을 알고는 서둘러 비탈길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일행 중 누군가 비탈길 한편을 가리키며 이것 좀 봐, 했다. 허벅지만큼한 나무줄기에, 손목 두께만한 다른 나무줄기 하나가 안기듯 달라붙었는데 붙은 지점은 이미 하나로 단단히 유합되어있었다. 연리목(連理木)이었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가 자라다가 줄기가 합쳐져 한 나무로 자라며 물관과 체관을 공유하게 되는 것을 연리목이라 하는데 숲을 다니다보면 연리목이라는 것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라 힐긋 눈길만 주고 돌아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달라붙은 나무의 밑동이 이상했다. 다시 돌아섰다. 내 허리쯤에서 댕강 줄기가 잘려 있었다. 잘리고 남은 윗부분이, 막 교수형을 당한 자의 두 발처럼 허공에서 흔들렸다. 잘린 단면이 울퉁불퉁하지 않고 매끈한 것으로 보아 낫이나 칼 또는 톱에 의해 단번에 그리된 것으로 보였다.

누굴까. 누가 여기까지 올라와 저 얇은 나무의 중간을 베었을까.

배를 기다릴 적까지는 궁금하더니 섬을 나와 집에 돌아와서는 잊었다. 그러다 날이 더워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자 더운 밤의 갈피로 구봉도 연리목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굳이 그 산에 올라 나무의 줄기를 자른 자, 그 자의 어쩌면 낫처럼 예리한, 가슴 한편을 저리게도 하는 분노가.

「내 사랑은 더욱더 열정적으로, 더욱더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데, 그의 사랑은 점점 꺼져가고 있어. 우리가 어긋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야.......(중략)......나로서는 모든 것이 오직 그 사람 하나에 있기 때문에, 그가 내게 자신의 전부를 더욱더 많이 쏟아 주기를 바라는 거야.......난 그에게 벌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서, 나에게서 벗어날 거야.」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중에서, 민음사)

그저 나무 한 그루 베어진 거라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거지만 하필 그것이 연리목이어서였을까, 나무를 베어버린 자의 분노를 떠올리자 어쩔 수 없이 안나의 분노가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러시아 정계 고위직 관료와 결혼해 안락한 상류사회의 삶을 누리던 안나는 우연히 젊고 잘 생긴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면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결국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브론스키와 새 삶을 꾸리지만 불륜한 여성은 철저히 배척하는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의 냉대와 멸시에 부딪혀 홀로 고립된 채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차, 자신을 향한 브론스키의 사랑마저 점점 식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브론스키가, 그의 어머니가 소개해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고 믿게 되자 ‘그래, 기차역으로 가야 해. 만일 그가 그곳에 없다면 내가 그곳으로 가서 현장을 덮쳐야 해.’라고 결심하는 안나. 그러나 막상 기차역에 닿자 질투와 분노, 증오는 정점을 향해 달리고 마침내 이제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는 브론스키를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오는 화물열차에 몸을 던지기로 한다. 그러나 팔에서 흘러내린 빨간 손가방 때문에 첫 번째 객차에 몸을 던지려던 시도가 어긋나자 안나는 습관처럼 성호를 긋는다. 그런데 ‘십자가를 긋는 친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속에 처녀 시절과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던 암흑이 찢어지고, 일순간 과거의 모든 눈부신 기쁨과 함께 삶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 눈부신 기쁨과 삶은 안타깝게도 이미 활활 타오른 안나의 분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안나는 두 번째 객차 아래로 ‘어깨 사이에 몸을 푹 숙인 채 객차 밑으로 몸을 던져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고는 마치 곧 일어날 자세를 취하려는 듯 경쾌한 동작으로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한 짓에 몸서리를 쳤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가차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떠밀고 그녀를 질질 잡아끌고 갔다’

어떤 이유로, 아직 창창한 삶을 마감하고자 마음먹은 이가 있다면 그가 누구건 어떤 삶을 살았던 그 마지막이 안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삶의 마지막에 비로소 그동안은 의식하지 못했던 어떤 숨겨진 기쁨 그리고 그 기쁨에 대한 한없는 감사가 불꽃처럼 뜨겁게 그의 삶에 타올랐으리. 그 불꽃에 그만 마음을 돌린 이도 있고 불꽃을 지켜보며 그대로 스러져간 이도 있으리라.

서둘러 구봉도 산을 내려오던 중에 풀이 무성한 흙길에는 손톱만한 자잘하고 희끄무레한 것들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살피는데 집고 보니 더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없이 가벼운 무슨 덩어리 같기도 하고 시든 열매 같기도 하고 곤충의 탈피각(脫皮殼) 같기도 했다. 머리 위 하늘을 올려다보고야 개다래꽃인 줄 알았다. 나무를 칭칭 감고 오른 개다래 덩굴이 하늘 한 자락에 걸려 있었다. 손바닥 위의 작은 회색 덩어리가, 그 곱고 사랑스럽고 향이 좋은 개다래 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어디에도 꽃의 흔적은 없었다. 다만 처녀시절의 부풀대로 부푼 봉긋한 봉우리로 돌아가고라도 싶었던 걸까, 그때의 모양새로 한껏 오므라들어서는 손톱 끝으로 조심스럽게 중심을 일구자 얇은 꽃잎 조각의 흔적이 나타나긴 했다.

연일 무더위에 열무도 힘들고 오이도 힘들고 상추도, 얼갈이도, 나무도 힘든 요즘, 물수건으로 내내 얼굴을 닦으며 구봉도 낮은 산의 연리목을 다시 생각한다. 이제 연리목이라고도 할 수 없게 된 그는 아마, 댕강 잘려나간 나무가 뻗어낸 가지들 중 자신을 향해 뻗은 것은 거두고 그 반대편으로 뻗은 먼 가지는 버리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꽃 진 자리에 어린 열매를 두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푸르고 무성하게 잎을 내어 고요히, 견디고 노동하고 수고하고 있을 것이다.

연리목은 보통 금실 좋은 부부나 남녀 사이를 상징한다. 하지만 한쪽의 다른 한쪽에 대한 맹목적 집착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어떻게 해석하건, 밑동이 잘려나간 나무나 그 나무를 단칼에 베어버린 이나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존재를 자신의 내부에 떠안게 된 나무나 그리고 결국 기차에 몸을 날린 안나나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성경의 한 구절 ‘복수는 나의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로 시작하는데 인간사가, 오직 신만이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고 엄중하다는 뜻이리라.

고요해서 더 검어보이던 그 산의 오디, 그 오디를 먹는 일은 결국 다른 생명의 치열함을 먹는 일이라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한층 엄중해지는 한여름 밤이다.


기사입력: 2017/07/25 [11:25]  최종편집: ⓒ seoch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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