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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7/11/26 [19:56]

 11월 들어 우이령을 자주 걷게 되었다. 우이령은 1968년 간첩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후 40여 년간 통제되었다가 2009년 개방되었다. 그래선지 미묘한 신비감까지 더해져, 처음 우이령을 걷는 사람들은 초입부터 은근히 들뜨게 된다. 하지만 막상 다 걷고 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그건 예를 들어 령, 자가 붙은 한계령이나 대관령과 비교하면 정상이라고 해야 300미터 남짓이고 또 한계령 등의 수려한 경관에는 그 정도가 미치지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부터도 몇 년 전 달랑 한 번 우이령을 넘고는 올해 11월이 되도록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올해는 우이령은 단풍이 제법 좋았다. 하지만 예닐곱 번을 오가도록 오봉전망대를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맨발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망설임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두 손에 들었다. 그리고 맨발로 흙을 디뎠다. 맑고 찬 고드름이 와락 발바닥에 와 닿는 줄 알았다. 심장까지 선뜻해지며 이어 머리카락에도 알알이 고드름이 열리듯이 서늘했다. 11월 중순의 대지가 이런 마음이구나, 겨울을 앞둔 그의 긴장과 각오는 이러하구나 싶었다. 사람이건 다른 생명체건 그의 몸과 내 몸이, 그의 피부와 내 피부가 닿는 순간은 언제나 놀랍다. 때로 감동이다. 그를 안다는 말은 피부와 피부가 닿는 일에서부터 진정으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하여간 맨발로 우이령을 딛자 그러한 놀람과 감동이 무생물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래 무심하던 우리 둘, 그러니까 우이령과 나는 맨발을 계기로 비로소 생애 처음으로 서로를 응시하게 된 것 같았다. 여전히 방황하는 서로의 두 눈, 때 이른 11월의 찬바람에 트고 마른 서로의 입술, 아직도 두려운 것이 많은 붉게 상기된 뺨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뜨거운 서로의 심장을 우리는 비로소 확인하게 된 것만 같았다.

▲     © 사진 장하윤

맨발에 와 닿은 우이령은 눈으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화강암이 풍화되며 생긴 마사토로 덮인 길은 따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특별히 발바닥에 걸리는 것 없이 편안했다. 그리고 아스팔트처럼 평평해 보이기만 하던 바닥은 발에 닿자 그 안에 또 다른 골짜기와 언덕, 능선을 품은 듯 굴곡지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오봉, 그 먼 화강암 덩어리가 시간과 바람과 비의 레일을 타고 이런 식으로 내게 건너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분도 채 안 돼 발이 시렸다. 군데군데 길바닥에 웅덩이처럼, 갈색 솔잎이 무리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급한 대로 밟아 보았다.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것이 그대로 온기가 되어 한참을 더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몸이 금세 따뜻해졌다.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이 솔잎 무리에서 저 솔잎 무리로 옮겨 다녔다. 맨발로 걸으면서는 몸짓이 조심스러워지고 속도도 느려지며 자연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도 되었다. 잎 진 아카시고목 잔가지 사이로 동고비며 박새며 바삐 오가는데 간간이 츠릅츠릅, 하고 한지로 만든 여린 손부채 대나무살이 촤락 펼쳐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목눈이일 것이다. 아카시 우듬지가 높고 멀어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다크써클을 오려 붙인 듯 움푹 팬 동그란 그의 검은 눈을 떠올리고는 혼자 웃었다. 길 가장자리 신갈나무 낙엽 위로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열심히 날갯짓을 하는 겨울자나방 수컷 한 마리. 대부분의 나비들이 사랑을 끝내고, 혹은 생을 마감하거나 혹은 겨울잠에 든 이 계절 저 혼자 사랑을 찾아 열렬히 날개를 펄럭이고 있다. 사진으로만 본 겨울자나방 암컷은 나방이라기보다 고문을 당해 두 팔을 잘린 것 같은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참나무 줄기 어디쯤에서 망부석처럼 고요히 수컷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개가 퇴화되어 날 수가 없고 대신 수컷을 부르는 페로몬을 뿜어낸단다. 날 수 없는 암컷은 향기를 뿜어 수컷을 부르고 수컷은, 엄지손톱만한 여린 날개를 저어 그 자신이 온기가 되어 암컷에게로 가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11월의 차디찬 대기는 암컷의 향기와 수컷의 온기가 오가는 길이 되는 셈이다. 암컷이 굳이 날개를 포기한 이유를 곰곰 생각하던 중에 길이 급하게 굽어지더니 맞은편 산그늘이 일제히 길바닥에 내려오며 우이령은 금세 차고 섬뜩해졌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이빨이 부딪힌다. 이제부터는 솔잎 징검다리도 없다. 대신 길 가장자리에 잘 마른 단풍잎이며 신갈나무잎이 수북. 한 발 디디자 이내 발목까지 묻히며 바스락, 경쾌한 소리가 난다. 마치 주변 사람은 아랑곳없이 혼자 와작 비스킷을 깨물어먹는 당돌한 아가씨 같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며, 거기다 와작와작 소리까지 재미있어 힘차게 걷던 중에 얼핏 낙엽 한 귀퉁이 아래 무당벌레 한 마리 그리고 알락수염노린재.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도 움직임이 없다. 고작 낙엽이불 한 장 덮고 둘 다 겨울잠에 들었나보다. 차마 더는 밟을 수 없어 조심히 흙길로 나섰다. 십여 분을 더 걸어 발이 무감각해질 때쯤 해서야 오봉전망대에 닿았다. 해는 벌써 서편 능선에 닿아, 능선을 넘어온 11월 오후의 햇빛 몇 자락이 금으로 빚은 거미줄처럼 나뭇가지 위에 펼쳐졌는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부시다. 남김없이 잎을 털어버린 겨울나무에 대한 태양 저 나름의 위로와 선물 같다.

오봉전망대에 앉아 발바닥의 흙을 털다 말고 물끄러미 내 발을 살폈다. 못생겼다. 엄마 발은 나보다 더 못생겼다. 물에 퉁퉁 불은 발이라고, 언니와 나는 손뼉까지 치며 자주 놀렸다. 엄마와 내가 맨몸으로 닿았던 기억은 그런데 발이 전부다. 옛날 사람인 엄마는 자식을 껴안고 쓰다듬고 다정히 입 맞추는 것에는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저 세 끼 뜨거운 밥 지어 먹이고 낯을 씻기고 헤진 옷을 꿰매 입히는 것이 그가 사랑을 전하는 전부였다. 어릴 때부터 내 발은 유난히 찼다. 그렇다고 박봉에 자식 넷에, 셋째의 발이 차다고 보약을 지어먹일 형편은 아니었으므로 엄마는 늦은 밤 집안일이 끝나면 네 형제가 옹기종기 모여 자는 방에 들어와 자신의 퉁퉁한 두 발로 내 어린 발을 오래 감싸 비벼주었다.

전망대에 앉은 채 마저 발바닥의 흙을 털고 양말을 신고 신발까지 신고도 몸이 떨려 그 자리서 몇 번 뜀박질을 하고야 한기가 잦아들었다. 혼자 체조를 하며 바라보는, 오가는 이 없는 11월의 우이령은 새삼 휑뎅그렁했다. 누가 이 차고 휑한 길을 걸었을까. 한국 전쟁 이후 미국 공병대가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작전도로로 개설하고부터 이 길은 이렇게 넓어졌다. 그 전까지는 소로(小路), 즉 오솔길이었다. 저 너머 양주 사람들이 등에 쌀과 땔감과 채소를 짊어지고 이 길을 넘어와 서울 미아리에 장을 펼쳤다. 가지고 온 것들을 다 팔고 좋은 값을 받고 해가 지기 전 다시 우이령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도 많았겠으나 해가 지도록 장사가 시원찮아 다시 등에 짐을 지고 어두운 밤길을 걷는 날도 있었으리. 그런 날은 무엇보다 마음이 더할 수 없이 바빴을 터. 집에 두고 온 어린 것들 혹은 연로한 부모님의 안위와 허기가 눈에 밟혔을 것이다. 그때도 오봉 위로는 달이 밝고 가끔 잠에서 깬 오목눈이 어린 것이 츠릅츠릅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삵이니 오소리니 하는 것들이 시커먼 그림자로 날래게 눈앞을 지나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얀 발목 바쁘게’ 우이령 밤길을 걸어간 그때의 사람들, 그 사이로 못생긴 우리 엄마 발이 떠오르자 아직 반나마 남은 인적 없는 우이령길 한가운데서 나는 그만 찔끔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지금 우이령을 걷는 사람들은 그때 사람들처럼 등에 땔감과 쌀과 채소를 지고 걷지는 않는다. 대부분 힐링이니 건강이니 하는 이유로 걷는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삶의 고단함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우이령은 맨발로 걸어야 그 면모가 드러나는 길이다. 맨발로 걸으며 새삼 사람에게,못 다 이룬 꿈의 언저리에 가닿아도 좋은 길이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의 시 ‘눈물은 왜 짠가’ 에서


기사입력: 2017/11/26 [19:56]  최종편집: ⓒ 서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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