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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되기로 한 날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7/12/25 [20:42]

11월 중순부터 한파가 잦더니 12월 들어서는 폭설도 잦아졌다. 내 고향 춘천에서는 영하 13도는 되어야 어, 춥다, 라고 하는데 서울이 지금 딱 그 부근. 창밖은 겨울바람이 어찌나 사나운지 나무들이 줄기째 흔들리고 새들이 무슨 총성에 놀라 한꺼번에 날아오르며 우왕좌왕하는가 싶은데 다시 보면 새가 아니라 잔가지에 붙어있던 마른 잎들이 마침내 어미에게서 떨어져 나와 바람의 소용돌이를 타고 잉잉 울며 구름 가득한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다. 이 추운 계절, 본 적 없고 들은 적 없는 연인들 한 쌍이 컴퓨터 모니터에 자신들의 사랑을 전해왔다. 단지 직장만 같을 뿐 내가 있는 곳에서 차를 타고 세 시간은 가야하는 먼 곳의 생면부지의 젊은 연인이 사내 모바일로 띄운 결혼 소식이었다.

8월 18일 서로 연인이 되기로 한 날

12월 17일 서로 부부가 되기로 한 날

함께 품어온 사랑의 씨앗으로 봄보다 먼저 꽃을 피우려합니다

.........

딸려 올라가듯 맹렬히 솟구치는 낙엽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모바일 청첩장 속의 연인들의 얼굴을 상상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구름에 오후의 해가 가리어 검기만 한 낙엽들처럼 둘의 얼굴은 어두운 실루엣으로만 두둥 떠오르고 대신, 8월 18일 서로 연인이 되기로 하였다니 결혼에 이르기까지는 불과 네 달 남짓 걸린 셈인데 그렇다면 충분히 생각은 하고 결정한 건지 그저 과년하여 일단 결혼을 서두른 것은 아닌지 등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가 그 끝에 그만, 슬퍼져버렸다. 본 적 없는 그들의 결혼에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서는 아니었다. 일단은 부러웠다.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날은 하나도 안 부럽고 다만 서로 연인이 되기로 했다는 그날, 고백을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둘의 가슴에 소용돌이쳤을 그날의 환희를 떠올리자 그만 나까지 그 환희의 끄트머리에 맨 살이 닿는 듯 짜릿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짜릿함의 뒤로 서러움이 밀려왔던 것이다. 새삼 누구와 연인이 될 일도, 환희에 빛날 일도 없는 내 중년에 대한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한참을 더 모니터를 바라보다 얇은 잠바 하나 걸치고 장갑도 모자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겨울바람은 문 밖에서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옷깃이며 소매 끝이며 바짓단이며를 재빨리 헤집고 들어와 단박에 이빨까지 맞부딪히게 하고, 갑자기 밀려온 먹구름은 오후 세 시의 해를 가려 거리는 지구 최후의 날처럼 어두운데 나는 그길로 가까운 참나무 숲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나방이 한 마리가 보고 싶었다.

▲     사진 장하윤

그를 처음으로 본 것은 대부분의 곤충들이 생을 마감하고 또는 겨울잠에 든 11월 중순이었다. 그 혼자 손톱만한 날개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참나무 숲을 배회하고 있었다. 날개는 시멘트 담벼락에 연실 제 몸을 문지른 듯이나 가장자리가 닳고 해져있었다. 내 마음이 다 바빴다. 너무 늦게 우화했거나 아니면 아직 짝을 만나지 못해 이렇듯 헤매는 거라고 성급히 단정 지었다. 그의 이름을 몰라 여기저기 물었다. 답이 신통찮아 내 마음대로 무슨 연두나방 어쩌고 하고 부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참나무겨울가지나방, 인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울나방 종류란다. 겨울나방은 11월에서 다음해 2월 사이에 성충으로 활동하며 짝짓기를 한단다. 그것도 아무 날이나 하는 것은 아니고 습도 적당하고 바람 고요한 어스름 저녁을 골라. 책을 찾아 그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놀랐다. 지난 달 본 것과 똑같은 평범하고 수수한 그의 사진 아래로 괴기스러운 다른 사진 한 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나무줄기와 분간이 안갈 정도로 칙칙한 색깔에 몸통은 누에나방 번데기처럼 퉁퉁한데, 날개가 없었다. 사진을 찍을 적 카메라 불빛까지 잘못 반사되어 두 눈은 불을 담은 것처럼 붉었다. 겨울나방 암컷이란다. 내가 본, 날개가 있는 것이 수컷이고 없는 것이 암컷인가 보았다. 없다기보다는 정확히는 앞가슴 등판에 무슨 찢어진 종이의 가장자리처럼 자라다 만 듯 붙어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기괴하고 불쾌한 마음이 들게 하였다. 날 수 없는 암컷은 페로몬을 뿜어 수컷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수컷은 그 냄새를 맡고 암컷에게로 날아와 짝짓기를 한단다. 하필 이 추운 계절을 골라 짝짓기를 하는 것은 천적이 거의 없는 계절이라 그렇다는 설명이었다. 추운 계절, 굳이 둘 다 날개를 움직여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수컷만 날개를 움직이고 대신 암컷은 생산에 전념하는 것이 어쩌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잠깐 하기는 했다.  

알지도 못하는 연인들에게서 날아온 모바일 청첩장 한통에 일없이 심란해져버린 12월 오후, 인적 없는 어두운 참나무 숲을 홀로 서성이다 문득 그때 책에서 본 겨울나방 암컷이 보고 싶어졌다. 그의 자라다만 날개와 그의 저녁 무렵의 사랑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람이 심하고 대기가 건조하여, 게다가 저녁이 되려면 아직 멀어 그를 만날 확률은 당장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저녁이 오는 것을 지켜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고요한 참나무 숲을 응시했다. 신갈나무며 졸참나무의 칙칙한 줄기를 살피고 혹 눈이 놓칠까 싶어 줄기 표면의 틈새는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어도 보았다. 그러면서 그가 굳이 이 추운 계절을 택해, 그것도 날개도 없이 사랑을 하기로 작정한 것은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라거나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서와 같은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다른 무수한 사랑의 전언과 달콤함에 섞이지 않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하고 모두가 열기와 번잡에 들뜨는 꽃 피고 새 우는 봄 말고, 그렇다고 평온하고 넉넉하여 결의와 맹세가 어쩐지 맥 빠지는 풍성한 가을 말고, 오히려 생명을 담보로 하고야 연인에게 갈 수 있는 험난한 계절을 부러 택한 건지도 모른다. 들이킨 숨에 폐가 얼어붙는 차가운 겨울 대기에 오롯이 자신만의 사랑, 자신만의 향을 실어 보내고 싶었는지도. 자신의 날갯짓이 혹여 겨울 저녁의 고요함을 흩뜨리고 자신의 날갯짓에서 뿜어져 나온 온기가 혹여 또 겨울 대기의 명징함을 더럽히게 하느니 차라리 저의 날개를 떼어버리자는 쪽으로도 결심했을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 위에 뜬, 본 적 없고 들은 적 없는 젊은 연인들의 모바일 청첩장에 잠깐 마음이 쓰렸던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순수, 그 헌신에 대한 갈망 아니었을까. 

 


기사입력: 2017/12/25 [20:42]  최종편집: ⓒ seoch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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