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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좋았다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8/01/25 [20:17]

▲     ©사진 장하윤


2018년 올해는 1월1일 첫날부터 마음이 안 좋았다. 오전에는 느닷없이 나이어린 동료에게 폭언에 가까운 반말을 들어야했고 오후에는, 또 다른 동료의 격한 감정 표현에 놀라야했다. 두 경우 다 내 입장에서는 전후맥락조차 짐작할 수 없었으므로 몹시 당황했다. 소심한 내 성격에 대들기는커녕 따져 묻지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마음만 끓이다 어찌어찌 짬을 내어 가까운 숲으로 갔다. 숲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참았던 억울함이 그제야 솟구치며 눈물까지 찔끔 나올 판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의 무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격하게 반응하기 전, 그 둘과 나 사이에 불편한 기색이나 고성이라도 오갔으면 그나마 이해가 될 것인데 그런 전조라곤 없이 갑자기 터져 나온 반응들에 대해서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나중에는 괘씸하기까지 했다. 추운 날 혼자 숲 속 약수터에 앉아 분을 삭였다. 하필 계곡물은 그날따라 티 없이 맑은 소리를 내며 졸졸 흘러 그것이 오히려 더 서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둘이 노처녀 노총각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그렇게 히스테릭한 것인가 아니면 둘이 짜고 부러 나를 해코지하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보아하니 내가 무른 듯하자 대놓고 무시하기로 한 것인가 등 생각은 파문처럼 퍼져나가며 마침내는 나의 올 한 해가 몹시 불길한 해가 될 거라는 데까지 미치게 되었다.

지난 가을, 생애 처음으로 점쟁이를 찾아갔더랬다. 아직 새파란 젊은이인 그는 다음 해, 그러니까 올해 내 운이 좋다고 했다. 점쟁이 따위 재미로 듣고 흘리는 거라고 쿨한 척은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아 일없이 히죽거리던 차에 하필 새해 첫날 이렇게 되자 점쟁이 그놈이 사기꾼이구나, 돈만 버렸구나, 그런 놈을 괜찮은 놈이라고 소개한 동네아줌마도 한 통속이구나 싶어지며 한꺼번에 미워졌다. 그러면서, 새해 첫날이 이럴진대 앞으로 남은 364일은 어쩔 것이냐, 364일의 불길(不吉)과 가족의 미래는 어찌할 것이냐에 생각이 닿았다. 그러자 암담해지며 이어서는 이깟 일로 주저앉는 나는 또 얼마나 한심한가 더욱 답답해졌다. 겨울 숲은, 간간이 고목을 두드리는 텅 빈 딱따구리 소리 그리고 산 사면 저쪽으로 단체로 눈 목욕을 즐기는 까마귀들 소리. 무심히 소리들을 좇던 차에 약수터 위쪽 덩굴에 시선이 가 닿게 되었다. 덩굴의 모양새며 느낌이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덩굴 한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위로 뻗는 대신 줄기 한가운데가 포물선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숨이 끊긴 듯 줄기며 가지는 검고 물기라곤 없이 바짝 말랐고 나무껍질 표면은 들떠 여기 저기 갈라져 있었다. 그가 한때 뽕나무였다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아마 뽕나무를 타고 올라간 개다래덩굴이 무럭무럭 자라며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무줄기가 조금씩 휘어지다 결국 이 지경이 되었던가보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숨이 끊어진 것은 뽕나무만이 아니었다. 개다래덩굴도 여기저기 토막이 나 있었다. 그것도 그냥 대충 토막 난 것이 아니라 마치 병력이라도 동원되어 샅샅이 수색을 당한 듯 지상과 연결된 부분들은 모조리 끊어져 있었다. 토막 난 부분의 단면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낫이나 칼 같은 날카로운 것에 잘린 것이 분명했다. 사람이 그리한 것일 터였다.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그는 개다래덩굴에 온몸이 꽁꽁 묶여 덩굴처럼 휘어져가는 뽕나무를 보고 몹시 분노에 찼을 것이다. 하여, 이곳이 허락 없이 함부로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되는 특별보호구역임을 알면서도 어느 밤 또는 어느 새벽을 택해 이렇듯 빈틈없이, 이렇듯 낱낱이, 생명과 연결되는 부위는 모두 찾아 단칼에 그었을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그의 분노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얼마나 분했으면!

........

나는 가만히 앉아, 얼마나 분했으면, 하고 읊조려보았다. 그러자 그 읊조림을 계기로 하루 내 쌓인 분의 실마리가 맥없이 풀리며 긴장했던 몸도 함께 풀려왔다. 그러면서 또 비로소 내가 마주한 풍경이, 그 풍경의 쓸쓸함이, 어떤 거대한 우주선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며 그 그림자가 지상에 드리우듯 내 마음 전체에 어둡게 드리워지던 것이다. 누가 잘못했건 누가 억울하건 아니면 둘 다 억울하건 이제 둘은 삶의 저 반대편에 액자처럼 서있을 뿐이다. 내가 건너갈 수 없고 그 둘이 건너올 수도 없는 허공에 더는 개다래덩굴도 더는 뽕나무도 아닌 것으로 서서. 그리고 그것을 응시하는 나를 어둡게 물들이며.

그만 약수터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쭈그리고 앉았다. 투명한 계곡물 속에 고운 낙엽 한 장. 갈색 이파리 한가운데 손톱만한, 정갈한 동그라미가 하나 나있다. 지난 봄 애벌레가 갉아먹은 자국이다. 이렇게 곱게 베어 먹고 지금 그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꼬물꼬물 기어갔을까. 궁금해 하다 이내 머쓱해졌다. 지난해 여름 그는 어른이 되어 이 숲 어디에 알을 낳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을 무렵 가볍게 마르며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가 없는 숲, 낙엽에 남은 동그란 그의 흔적은 애처롭기만 한데 그래서 오히려 더 맑은 차가운 낙엽 한 장을 손바닥에 얹고, 생각해보니 새해 첫 날은 좋았다.

▲     ©사진 장하윤


기사입력: 2018/01/25 [20:17]  최종편집: ⓒ seocho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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