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의 미화원
(장편소설. 연애소설)
줄거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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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30대 주부 이한주는 두 번째로 바람을 피우다 남편에게 걸려 한밤중 집에서 도망친다. 돈도 휴대폰도 챙기지 못해 산 아래서 잠을 청하고 난 다음날, 일터인 국밥집으로 출근하지만 경찰인 남편이 미리 손을 써 그곳에서도 잘린다. 내연남마저 한주를 모른 체한다. 급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유튜브에서 본의 아니게 댓글 테러까지 당하자 서럽고 분해 죽기로 결심. 목을 맬 장소는 지난밤 산 아래 벤치에서 자며 마주한 아름다운 산이다. 깊은 밤, 낑낑대며 몇 시간에 걸쳐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만 칠칠찮은 성격 탓에 죽는 일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산꼭대기에서 술에 취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그 산의 미화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면서 한주의 삶은 기존의 삶과는 180도 달라지게 되는데......
표면적으로는 이 작품은 바람을 피우다 걸린 가정주부라는 흔하디흔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지만 뷸륜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다소 어둡고 음울하며 끈적거리는 데 비해 이 작품은 경쾌하고 가볍다. 그리고 그 경쾌함과 가벼움은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욕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나온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그랬듯이 이 작품의 기본을 관통하는 것은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과 욕망에 관한 성찰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삶은 풀과 나무와 오소리와 멧돼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고 먹고 청소하고 사랑한다. 욕망에 충실하다. 하지만 동시에 오소리의 삶, 나무의 삶과는 또 다른데 그것은 인간은, 어리석건 현명하건 근본적으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들은 현실에서 서로 충돌하고 추종하며 때로는 비애를, 때로는 숭고한 전설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비애와 전설까지도 합쳐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으로 규정할지는 순전히 읽는 사람의 몫이다.
《검은 숲의 사랑》에서 보여준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도 화려한 문장은 《그 산의 미화원》에서도 유감없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 산과 숲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문장들이다.
3. 책 속의 문장들
“나도 사생활이 복잡해지고부터 엄청 영혼이 자유로워졌거든! 이제 우리는 자신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면 안 돼. 호모 씬리스라고 해야 돼. 섹스를 하더라도 나처럼 철학적 섹스를 해야 한다구. 철학적 섹스라니, 멋지지 않아?”
여기 사람들은 또, 대체로 씩씩하고 활발했다. 여자들은 특히, 젊었건 늙었건 체구가 작건 크건 마치 커다란 망개나무 잎이 펄럭이듯 신선하고 빛나는 얼굴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남쪽으로 산을 넘어 다녔다. (중략) 햇빛에 얼굴이 타는 것도 조금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또 자신의 키의 두 배가 넘는 횡대목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올라서는, 쇠로 된 무거운 지렛대로 남자들과 똑같이 돌멩이를 캐내고 즉석에서 물과 시멘트 가루를 섞어 콘크리트를 만들어 뚝딱 말목을 세웠다. (중략) 그럴 때의 그녀들은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질끈 머리를 동여매고, 수건에는 나뭇잎 한 장을 세련되게 꽂고, 햇빛에 버무린 은사시나무 이파리처럼 명랑하게 수다를 떨며, 제복 바지는 한쪽을 걷어 올려 가을 무처럼 튼튼하고 미끈한 종아리를 드러내고 조금은 불온하게 불의 나라로 건너가는 것 같았다. 새로운 세계가 한주에게 열리고 있었다.
남편 말대로 한주가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일 수도 있다. 영주 말대로, 죄의식 없는 인간이라는 데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세상이 다 한주를 악마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한주가 정말 악마라면 만개한 산벚꽃 아래서 이렇게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지 않은가. 악마가 이토록 청결하게 철 수세미에 락스를 묻혀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변기를 닦지는 않지 않는가. 악마는 화장실 청소는 하지 않는다.
4. 지은이: 장수정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청소년 숲체험마을공동체 ‘아띠마당’ 대표
‘서초뉴스’ 기자
지은 책으로는 수필집 《안드로메다의 나무들》, 장편소설 《검은 숲의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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